제천

한 해에 한 번, 나라 사람이 전부 모여 며칠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날이 있었습니다. 부여는 그것을 영고라 했고, 고구려는 동맹, 동예는 무천이라 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고르는 다섯 나라는 저마다 이런 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대부분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대목에서 나옵니다 — 3세기에 쓰인, 이 게임이 시작하는 300년과 가장 가까운 기록입니다. 동시에 중국 조정이 바깥 사람들을 적은 글이기도 합니다. 한 나라에만 전하는 것은 그 나라 것으로만 적었고, 원문을 함께 실어 직접 확인하실 수 있게 했습니다.

영고 — 북을 울려 신을 맞다
부여은정월 — 음력 12월

영고 — 북을 울려 신을 맞다

나라 사람이 모두 모여 며칠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춥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재판을 끝냅니다.

부여의 영고는 이 목록에서 유일하게 겨울에 열립니다. 다른 셋은 모두 시월, 곧 추수 뒤입니다. 겨울에 여는 이유를 사료는 말하지 않지만, 부여가 사냥과 목축의 비중이 큰 북방 사회였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름 그대로 북(鼓)을 울려 신을 맞이(迎)하는 제사입니다. 주목할 것은 축제의 뒷부분입니다 — 이때 형옥을 판결하고 갇힌 사람을 풀어주었습니다. 한 해의 재판을 제사 자리에서 매듭지었다는 뜻이고, 제천이 종교 행사이면서 동시에 나라의 사법 절차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은정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데, 나라 사람이 크게 모여 며칠을 이어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름하여 영고라 한다. 이때 형옥을 판결하고 갇힌 이를 풀어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제사와 재판이 같은 자리에서 끝났습니다.
동맹 — 굴에서 신을 모셔 나오다
고구려시월

동맹 — 굴에서 신을 모셔 나오다

나라 동쪽 큰 굴에서 신을 모셔다 강가에 앉히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고구려의 동맹은 추수 뒤 시월에 열리는 국중대회입니다. 다른 제천과 다른 점은 신을 모셔 오는 절차가 분명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 나라 동쪽에 수혈(隧穴)이라 부르는 큰 굴이 있고, 그 안의 수신(隧神)을 맞아 나라 동쪽 물가에 모시고 제사했습니다. 굴에서 나와 물가에 앉는다는 구조는 주몽의 어머니 유화, 곧 물의 신이자 곡모신으로 읽히는 존재와 겹쳐 이해되곤 합니다. 확정된 해석은 아니지만, 건국 신화와 국가 제사가 같은 이야기를 공유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시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고 나라 사람이 크게 모이니 이름하여 동맹이라 한다. 나라 동쪽에 큰 굴이 있어 수혈이라 하는데, 시월 국중대회 때 수신을 맞아 나라 동쪽 물가에 모시고 제사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건국 신화와 나라 제사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천 — 이름이 곧 춤
동예시월

무천 — 이름이 곧 춤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습니다. 이름부터가 '하늘에 춤춘다'입니다.

동예의 무천(舞天)은 이름에 이미 성격이 들어 있습니다 — 춤 무(舞), 하늘 천(天). 시월에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다고 짧게 전합니다. 동예는 이 게임의 플레이 가능한 다섯 나라에 들어가지 않지만, 강릉과 함흥 사이 동해안이 그들의 땅이었고 그 지역은 판 위에 있습니다. 같은 기록은 동예가 호랑이를 신으로 섬겨 제사했다는 것과, 다른 마을의 경계를 함부로 넘으면 소나 말로 물어내게 하는 책화(責禍)라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도 함께 전합니다.

늘 시월이면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를 무천이라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다른 마을 경계를 넘으면 소나 말로 물어냈습니다.
소도와 천군 — 군장의 손이 닿지 않는 땅
삼한해마다 오월과 시월

소도와 천군 — 군장의 손이 닿지 않는 땅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걸어둔 별읍이 있었고, 그 안으로 달아난 죄인은 잡아갈 수 없었습니다.

삼한에는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천군(天君)입니다. 그리고 별읍을 두어 소도(蘇塗)라 불렀는데,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걸어 귀신을 섬겼습니다. 기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것입니다 — 도망친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았다. 정치 권력과 제사 권력이 아직 분리되어 있었고, 제사의 영역은 군장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게임의 신라와 가야가 자리 잡은 땅이 곧 삼한의 땅입니다.

귀신을 믿어 국읍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주관하게 하니 이름하여 천군이라 한다. 또 여러 나라에 각기 별읍이 있어 이름을 소도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걸어 귀신을 섬긴다. 도망하여 그 안에 이르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는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제사의 땅에는 왕의 힘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계욕 — 구지봉에서 부른 노래
가야삼월 계욕일

계욕 — 구지봉에서 부른 노래

물가에서 몸을 씻는 날, 봉우리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왕을 맞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가야의 시작을 계욕일 — 물가에서 몸을 씻어 부정을 씻는 삼월의 날 — 에 둡니다. 구간(九干)과 사람들이 구지봉에 올라 흙을 파며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가 구지가입니다. 하늘에서 금합이 내려오고 그 안의 알에서 수로가 나왔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앞의 네 항목과 성격이 다릅니다 — 3세기 기록이 아니라 13세기에 정리된 건국 설화이고,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다만 계욕이라는 날짜, 노래와 춤으로 신을 맞이하는 형식은 앞의 제천 기록들과 같은 계통에 있습니다.

앞의 넷은 목격담이고, 이것은 건국 설화입니다. 같은 무게로 읽으면 안 됩니다.
시조묘 — 왕이 즉위하고 가장 먼저 가는 곳
신라 · 백제즉위 이듬해가 관례

시조묘 — 왕이 즉위하고 가장 먼저 가는 곳

하늘에 지내던 제사가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옮겨 갑니다. 그것이 왕권이 자리 잡았다는 표시입니다.

『삼국사기』는 신라 남해왕 3년에 시조 혁거세의 사당을 세우고 사시로 제사했으며, 왕의 친누이 아로가 제사를 주관했다고 전합니다. 이후 신라 왕들은 즉위 이듬해에 시조묘를 찾는 것이 관례가 됩니다. 백제도 동명묘(東明廟)에 제사한 기록이 반복해 나옵니다. 앞의 제천의례들이 '나라 사람이 모두 모이는' 공동체의 축제였다면, 시조묘 제사는 특정한 핏줄이 왕이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제사의 주인공이 하늘에서 조상으로 바뀌는 것은 곧 왕권이 굳어졌다는 뜻입니다.

제사의 대상이 하늘에서 조상으로 바뀌면, 왕권이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놀이 — 씨름, 축국, 저포, 그리고 돌팔매
삼국 공통제사가 있는 날, 그리고 그냥 있는 날

놀이 — 씨름, 축국, 저포, 그리고 돌팔매

축제의 며칠은 먹고 마시는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도 남아 있습니다.

씨름은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 중국 지린성의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 두 사람이 맞붙은 장면이 있고, 무덤 이름 각저(角抵)가 곧 씨름입니다. 축국(蹴鞠)은 공을 차는 놀이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을 하다가 옷고름이 떨어진 일이 뒷날 혼인으로 이어지는 장면에 나옵니다. 저포(樗蒲)는 나무 주사위를 던지는 놀이이고, 투호(投壺)는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입니다. 석전(石戰)은 편을 갈라 돌을 던지는 격렬한 겨루기로, 뒷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이 게임의 장수들이 벌이는 일기토와 달리, 이쪽은 죽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삼국 통일의 두 주역은 공을 차다가 사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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