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기근초고왕백제314년 – 375년정복형불변무력85지력90매력90정치92글은 왜로 보내고 창은 북으로 보내오. 둘 다 백제의 손이오.백제 제13대 왕. 백제 전성기를 이끈 정복 군주. 마한을 완전히 통합하고,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투에서 전사시켰다. 일본에 학자와 문물을 전했다.
자세히 보기무령왕백제462년 – 523년경세형불변무력76지력88매력86정치90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은 스물두 곳에 사람을 보내는 지루한 일이오.백제 제25대 왕. 웅진(공주)에서 무너진 국력을 다시 세운 중흥의 군주. 지방 스물두 곳에 담로를 두고 왕족을 보내 통제했으며, 고구려에 반격해 한강 이북까지 밀어붙였다. 무령왕릉은 지석이 나와 주인과 죽은 날짜까지 확인된 유일한 삼국시대 왕릉이다.
자세히 보기성왕백제523년 – 554년경세형의리무력78지력88매력88정치85도읍을 옮기는 것은 도망이 아니라 다시 세우는 일이오.백제 제26대 왕. 사비성으로 천도하여 백제를 중흥시키려 했다. 한강 유역 탈환을 위해 신라와 연합했으나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자세히 보기아신왕백제392년 – 405년정복형불만무력70지력85매력88정치88관미성을 되찾기 전에는 내 치세를 셈하지 마시오.백제 제17대 왕. 고구려에 빼앗긴 관미성을 되찾으려 여러 차례 북벌에 나섰으나 광개토대왕에게 번번이 꺾였다. 397년 태자 전지를 왜에 보내 손을 잡고 고구려를 견제했다.
자세히 보기계백백제610년 – 660년결사형불변무력96지력80매력88정치65오천으로 오만을 막으러 가는 자는 살아 돌아올 셈을 하지 않소.백제 마지막의 명장. 황산벌 전투에서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 5만 군에 맞서 싸웠다. 전사 전 가족을 직접 처단한 결의로 유명하다.
자세히 보기위덕왕백제554년 – 599년수성형의리무력68지력86매력84정치90아버지를 잃은 자리에서 마흔다섯 해를 앉아 있었소.백제 제27대 왕. 관산성에서 아버지 성왕을 잃고 즉위해 45년을 재위했다. 흔들린 나라를 수습하고 중국 남북조·왜와 두루 통교하며 백제를 다시 일으켰다.
자세히 보기온조왕백제기원전 18년 – 28년창업형불변무력82지력80매력85정치80형은 바닷가를 골랐고 나는 강가를 골랐소. 땅은 고르는 것이오.백제의 시조. 고구려 동명성왕의 셋째 아들로 형 비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위례성에 백제를 건국했다. 한강 유역의 비옥한 땅을 개척했다.
자세히 보기의자왕백제599년 – 660년처세형실리무력80지력82매력85정치75젊어서는 성 사십 개를 얻었고, 늙어서는 하나도 지키지 못했소.백제 마지막 왕. 즉위 초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는 등 용맹했으나, 말기에는 사치와 향락으로 국력이 쇠퇴했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항복했다.
자세히 보기동성왕백제479년 – 501년경세형실리무력72지력85매력80정치82왕권은 세우는 데 이십 년, 무너지는 데 하룻밤이오.백제 제24대 왕. 웅진 천도 후 흔들리던 왕권을 다시 세웠다. 493년 신라와 혼인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진에 함께 맞섰으나, 501년 가림성으로 좌천시킨 백가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당했다.
자세히 보기부여풍백제620년 – 660년결사형실리추정무력88지력78매력75정치68나라가 없어져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남으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오.백제 말기 장군. 의자왕의 측근으로 신라·당 연합군과 맞서 싸웠다. 660년 사비성 함락 후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자세히 보기비류백제기원전 18년 – 10년처세형불만무력80지력75매력78정치72형이라는 것은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지 옳다는 뜻이 아니었소.백제 건국 신화의 인물. 온조의 형으로 위례성 일대를 다스렸으나 형제의 갈등 끝에 패하고 죽었다. 백제 초기 역사의 상징적 인물.
자세히 보기흑치백제570년 – 630년수성형실리추정무력85지력80매력72정치65지는 싸움에서도 물러설 자리는 골라야 하오.백제 말기 장군. 의자왕 시대에 활약하며 신라와의 전투에 참전했다. 백제 국방의 중견 장수로 기록된다.
자세히 보기개로왕백제455년 – 475년처세형실리무력78지력75매력70정치68바둑 한 판에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늦게 알았소.백제 제21대 왕. 고구려에 사신을 모욕했다가 475년 한성을 함락당하고 개로왕은 처형당했다. 한성 상실은 백제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자세히 보기위구태부여167년 – 204년외교형의리무력80지력74매력78정치84부여는 큰 나라 둘 사이에 있소. 나는 그 사이를 나라가 설 자리로 만들었소.2세기 말 부여의 왕. 후한과 통하며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맞아 고구려·선비 사이에서 부여의 자리를 지켰다. 부여 외교의 전성기를 대표한다.
자세히 보기의라부여286년 – 0년경세형불변무력72지력78매력80정치82무너진 것을 다시 세워 본 사람은, 그것을 두 번 잃지 않으려 하오.부여의 왕. 285년 모용외의 침공으로 아버지 의려왕이 죽고 도읍이 무너지자 옥저로 피했다가, 이듬해 진(晉)의 동이교위 하감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되찾았다. 무너진 왕국을 다시 세운 복국(復國)의 왕이다.
자세히 보기해부루부여0년 – 0년현자형불변추정무력66지력76매력78정치86늘그막에 겨우 얻은 것은 쉬이 놓지 않는 법이오.동부여의 시조로 전하는 왕.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다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이를 얻어 금와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연대가 확정된 실존 기록이 아니라 건국 전승이다.
자세히 보기금와부여0년 – 0년창업형의리추정무력74지력72매력82정치78내 집에서 자란 아이가 강 건너에 나라를 세웠소. 나는 그것을 막지 않았소.동부여의 왕. 유화를 거두어 주몽을 기르게 한 인물로, 고구려 건국 설화가 부여에서 시작되는 이유다. 해부루와 마찬가지로 전승 속 인물이다.
자세히 보기의려부여0년 – 285년수성형불변무력78지력66매력74정치70왕이 성과 함께 끝나면, 그 성은 함락된 것이 아니라 지켜진 것이오.부여의 왕. 285년 모용선비가 쳐들어와 왕성이 함락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자제들은 옥저로 달아났다. 부여가 북방 강국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분기점이다.
자세히 보기대소부여0년 – 22년정복형불만무력84지력64매력68정치66강 건너로 달아난 자들은 언젠가 강을 도로 건너야 하오.동부여의 왕, 금와의 맏아들. 고구려를 여러 차례 압박했으나 22년 대무신왕과의 싸움에서 괴유에게 목이 베였다. 부여가 고구려에 밀리기 시작한 첫 장면이다.
자세히 보기마여부여0년 – 0년창업형의리무력70지력68매력70정치72내 뒤를 여섯 살 아이가 잇소. 그 아이가 설 자리를 남기는 것이 내 일이오.3세기 부여의 왕. 위(魏)와 통교했으며, 그가 죽자 여섯 살의 아들 의려가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자세히 보기수로왕가야42년 – 199년창업형불변무력80지력82매력88정치85바다 건너에서 온 왕비를 맞았소. 가야는 그때부터 바다 쪽을 보오.금관가야의 시조.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 해상 무역을 발전시켰다.
자세히 보기거칠왕가야42년 – 162년경세형실리추정무력78지력80매력82정치84쇠를 뽑는 나라는 굶지 않소. 쇠는 밥으로 바꿀 수 있소.대가야 제2대 왕. 철기 생산을 장려하고 신라·백제와 대등한 국력을 유지했다. 가야 연맹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
자세히 보기가실왕가야500년 – 560년현자형의리무력68지력88매력86정치82여러 나라의 말이 다 다른데 음악이 어찌 하나이겠소.대가야의 왕. '여러 나라의 말이 각기 다른데 음악이 어찌 하나이겠는가'라며 악사 우륵에게 열두 줄 가야금과 열두 곡을 만들게 했다. 가야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 그의 명에서 나왔다.
자세히 보기칠숙가야420년 – 500년현자형불변추정무력55지력92매력90정치85무기를 들지 않고도 연맹을 묶는 것이 있소. 그것이 법이오.가야 출신 고승. 불교를 가야에 전파하고 연맹 내 문화적 결속에 기여했다. 무장보다는 외교와 교화에 능한 인물.
자세히 보기질지왕가야200년 – 259년경세형실리추정무력78지력80매력82정치80절을 하나 세우면 왕비의 이름이 백 년을 가오.대가야 제4대 왕. 철기 생산을 확대하고 신라·백제와 대등한 외교를 유지했다. 대가야 전성기를 이끈 군주.
자세히 보기노서지가야250년 – 320년외교형의리추정무력62지력84매력88정치82연맹 안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이기는 일보다 어렵소.금관가야 여왕. 해상 교역과 철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가야 연맹 내 여성 통치자로서 낙동강 유역의 균형을 유지했다.
자세히 보기기문왕가야300년 – 380년외교형실리추정무력80지력78매력80정치76배가 드나드는 항구는 국경보다 넓소.금관가야 왕. 해상 무역과 철기 수출로 가야 연맹의 번영을 이끌었다. 신라의 팽창에 맞서 연맹을 결속시키려 했다.
자세히 보기구형왕가야490년 – 560년외교형실리무력74지력80매력82정치78나라를 넘기는 데도 예법이 있소. 나는 세 아들을 데리고 걸어 들어갔소.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세 아들과 함께 나라를 넘기고 진골로 편입되었다. 그의 증손이 훗날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는 김유신이다.
자세히 보기아효가야480년 – 532년수성형의리추정무력84지력76매력80정치72낙동강은 건너오기 전에 막아야 하오. 건너오면 강이 아니오.가야의 명장. 신라의 남진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다. 금관가야와 대가야 연합군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자세히 보기이진아시왕가야42년 – 100년창업형불변무력75지력78매력80정치78연맹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서로 참는 것이오.대가야의 시조. 후기 가야의 맹주가 된 대가야를 건국했다. 전성기 대가야는 신라와 맞먹는 국력을 가졌으며 독자적인 고분 문화를 발전시켰다.
자세히 보기구도가야450년 – 520년수성형의리추정무력86지력76매력78정치68물러설 곳이 없는 자리가 지키기에는 제일 쉽소.가야 연맹의 장군. 신라의 남하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다. 대가야와 금관가야 연합군의 전투를 이끌었다.
자세히 보기광개토대왕고구려374년 – 413년정복형불변무력95지력90매력95정치85국경은 지도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말발굽으로 밟아 정하는 것이오.고구려 제19대 왕. 역대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 '영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며 백제, 신라, 가야, 거란, 비려 등을 정벌했다.
자세히 보기장수왕고구려394년 – 491년경세형불변무력80지력92매력90정치95서두른 나라는 내 앞에서 여럿 무너졌소. 나는 기다리는 쪽이오.고구려 제20대 왕. 98세까지 장수하며 79년간 재위. 평양으로 천도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며 삼국 중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자세히 보기을지문덕고구려560년 – 620년수성형불변무력98지력95매력80정치75이긴 싸움은 대개 싸우기 전에 끝나 있소.고구려의 명장. 612년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30만 대군을 섬멸하여 고구려를 구했다. '살수대첩'은 세계 전쟁사에 빛나는 대승이다.
자세히 보기연개소문고구려603년 – 666년처세형불만무력92지력88매력85정치80권세는 청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쥐는 것이오.고구려 말기의 실권자. 642년 정변으로 영류왕을 시해하고 대막리지에 올라 병권과 정권을 한 손에 쥐었다. 645년 당 태종의 친정을 끝내 막아내며 고구려를 지켰다.
자세히 보기동명성왕고구려기원전 58년 – 기원전 19년창업형불변무력88지력85매력92정치80나는 빈손으로 강을 건넜고, 강 건너에 나라를 세웠소.고구려의 시조 주몽. 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에 고구려를 건국했다. 활쏘기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무예를 지녔다.
자세히 보기고국천왕고구려179년 – 197년경세형불변무력82지력88매력84정치86굶는 백성이 있는 나라는 국경이 아무리 넓어도 좁소.고구려 제13대 왕. 후한·오환·동예를 정벌하고 영토를 크게 넓혔다. '천'을 연호에 넣어 고구려의 자주성을 드높인 왕.
자세히 보기소수림왕고구려331년 – 384년현자형불변무력72지력88매력85정치90칼을 뽑지 않은 해가 다음 대에 뽑을 칼을 만드오.고구려 제17대 왕. 372년 불교를 공인하고 태학을 설립했다. 대외적으로는 전략적 자제로 고구려의 기틀을 다진 왕.
자세히 보기유리왕고구려기원전 19년 – 48년현자형의리무력84지력82매력86정치80부러진 칼 반쪽도 짝을 만나면 칼이 되오.고구려 제2대 왕. 동명성왕의 아들. 졸본을 국내성으로 옮기고 고구려의 기틀을 다졌다. 호랑이를 화살 한 발로 쏘아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자세히 보기미천왕고구려280년 – 331년정복형불변무력80지력85매력78정치88소금 지고 걷던 길이 뒷날 내 국경이 되었소.고구려 제15대 왕. 313년 낙랑군을 몰아내고 한반도 북부를 완전히 고구려 영토로 편입시켰다. 대외 팽창을 성공적으로 이끈 왕.
자세히 보기양만춘고구려600년 – 650년수성형의리무력90지력88매력82정치70성은 지키는 자의 것이지 쌓은 자의 것이 아니오.고구려 안시성성주. 645년 당 태종이 친정하여 공격했을 때 성을 지켜 당군을 퇴각시켰다. 삼국시대 최고의 방어전으로 꼽힌다.
자세히 보기고우고구려350년 – 400년수성형의리무력88지력82매력80정치75비석에 이름을 남기는 법은 하나뿐이오. 살아서 자리를 지키는 것.광개토대왕 시대의 고구려 장군. 광개토대왕릉비에 이름이 새겨진 대장으로, 백제·왜 연합군 격파에 공헌했다.
자세히 보기산상왕고구려227년 – 248년처세형실리무력76지력84매력80정치82왕좌는 형이 앉던 자리라 하여 저절로 오지 않소.고구려 제11대 왕. 동예·왜를 정벌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후한과의 외교를 통해 고구려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자세히 보기온달고구려530년 – 590년결사형불변무력94지력72매력78정치58계립현과 죽령 서쪽을 되찾지 못하면 나는 돌아가지 않소.빈곤한 출신에서 평강공주의 남편이 된 전설적 무사. 궁궐에서 멸시받았으나 뛰어난 무예로 고구려를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세히 보기보장왕고구려618년 – 682년처세형불만무력65지력78매력72정치70자리는 앉혀 주는 것이고, 뜻은 앉혀 줄 수 없는 것이오.고구려의 마지막 왕. 642년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한 뒤 그 조카인 그를 허수아비로 세웠다. 실권 없이 재위하다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자 당으로 끌려갔고, 고구려 705년의 역사가 그와 함께 끝났다.
자세히 보기김유신신라595년 – 673년정복형불변무력96지력92매력90정치82집 앞을 세 번 지나면서 들어가지 않았소. 그 뒤로는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소.신라 삼국통일의 주역. 가야계 출신으로 신라 최고의 장군이 되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을 격파하고 평양성 공략까지 참전했다. 흥무대왕으로 추봉됐다.
자세히 보기태종 무열왕신라604년 – 661년외교형실리무력72지력93매력96정치95군사를 빌리는 데는 말이 필요하고, 말에는 값이 없소.신라 제29대 왕 김춘추. 뛰어난 외교가로 당나라와 나당동맹을 성사시켜 백제 멸망의 기틀을 마련했다.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신라의 중흥을 이끌었다.
자세히 보기진흥왕신라534년 – 576년정복형실리무력78지력90매력92정치95내가 밟은 자리에는 비석을 세우오. 말보다 돌이 오래가오.신라 제24대 왕. 화랑도를 정비하고 한강 유역을 확보하는 등 신라의 기틀을 세운 왕. 관경 곳곳에 순수비를 세워 영토 확장을 기념했다.
자세히 보기문무왕신라626년 – 681년경세형불변무력80지력88매력88정치90나를 동해에 뿌리시오. 용이 되어 이 나라를 지키겠소.신라 제30대 왕. 실질적으로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676년 삼국통일을 완수했다. '나를 동해에 뿌려라'는 유언으로 유명.
자세히 보기선덕여왕신라606년 – 647년현자형불변무력60지력93매력96정치90그림 속 모란에 나비가 없으면 그 꽃에는 향이 없는 것이오.신라 최초의 여왕. 뛰어난 지혜로 백성의 마음을 얻었다. 황룡사 9층 목탑과 첨성대를 건립했으며, 당나라에 유학생을 보내 문물을 발전시켰다.
자세히 보기이사부신라500년 – 561년정복형의리무력86지력90매력82정치78나무 사자 한 마리로 섬 하나를 얻었소. 속임수도 병법이오.신라의 명장. 512년 나무로 만든 사자를 배에 싣고 풀어놓겠다 위협해 우산국(울릉도)을 항복시켰다. 562년에는 대가야를 정벌해 가야를 신라에 편입시켰고, 병부령으로 신라 군권을 총괄했다.
자세히 보기거칠부신라502년 – 579년현자형의리무력86지력88매력78정치84젊어서 중 행세로 적국을 걸어 다녔소. 지형은 그렇게 외우는 것이오.신라의 장군이자 재상. 젊어 승려 차림으로 고구려에 들어가 지형을 살피고 돌아왔다. 545년 진흥왕의 명으로 신라 최초의 역사서 국사(國史)를 편찬했고, 551년에는 죽령 이북 열 개 군을 빼앗아 신라의 한강 진출을 열었다.
자세히 보기혁거세 거서간신라기원전 57년 – 4년창업형불변무력80지력78매력92정치82알에서 났다는 말은 아비가 없었다는 뜻이오. 나는 처음부터 혼자였소.신라의 시조. 박씨의 시조로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서라벌에 신라를 건국하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자세히 보기원성왕신라660년 – 785년경세형실리무력74지력86매력84정치88왕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핏줄과, 그날 불어난 강물이었소.신라 제38대 왕. 김유신의 후손으로 즉위. 당나라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지방 제도를 정비하여 통일 신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자세히 보기김알천신라580년 – 654년수성형의리무력88지력84매력82정치75왕위를 사양해 본 사람은 그 뒤로 무엇이든 사양할 수 있소.신라 명장. 629년 백제의 침입을 막아내고, 이후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김유신과 함께 신라 군사의 핵심을 이룬 장수.
자세히 보기눌지왕신라356년 – 402년정복형불변무력82지력80매력85정치82아우들을 데려오는 데 사람 하나가 불에 타 죽었소. 그 값은 갚아야 하오.신라 제17대 왕. 417년 고구려에 보복 침입하여 영토를 회복했다. 신라의 영토 확장과 국력 강화에 기여한 왕.
자세히 보기진덕여왕신라610년 – 647년외교형의리무력58지력90매력92정치88비단에 시를 짜 넣어 보냈소. 그것도 국경을 지키는 방법이오.신라 제28대 여왕. 선덕여왕의 후계자. 뛰어난 외교와 내치로 나라를 안정시켰다. 647년 즉위하여 8년간 재위했다.
자세히 보기김관촉신라580년 – 640년수성형의리추정무력84지력86매력80정치78이름이 남지 않아도 성문은 누군가 지켜야 하오.신라 장군. 7세기 초 백제·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활약했다. 나당동맹 이전 신라의 국방을 지탱한 장수 중 한 명.
자세히 보기알지신라기원전 10년 – 80년창업형불변무력70지력85매력88정치80숲에서 우는 금궤를 열어 보니 아이가 있었소. 김씨는 거기서 시작하오.신라 김씨 왕족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전설과 함께 신라 왕실의 기원이 되는 인물.
자세히 보기설지신라520년 – 562년정복형실리추정무력90지력82매력78정치70낙동강 동쪽은 이미 정해졌소. 서쪽이 남았을 뿐이오.신라 장군. 562년 대가야 정벌에 참전하여 가야 멸망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낙동강 유역 확장에 공헌한 명장.
자세히 보기관창신라645년 – 660년결사형불변무력92지력78매력85정치60두 번 돌려보내졌소. 세 번째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신라의 젊은 화랑. 좌장군 품일의 아들로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홀로 백제 진영에 돌진했다. 계백이 어린 나이를 안타까이 여겨 두 번이나 돌려보냈으나 세 번째에 목이 베여 돌아왔고, 그 죽음에 격분한 신라군이 백제군을 무너뜨렸다. 그때 나이 열여섯이었다.
자세히 보기김대설신라600년 – 665년정복형실리추정무력86지력80매력76정치68전선은 대장군이 그리고, 우리는 그 선을 걷소.신라 장군. 7세기 중반 백제와의 전투에서 활약했다.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 전쟁의 전선을 이끈 장수.
자세히 보기비담신라580년 – 647년처세형불만무력82지력80매력78정치65별이 떨어지면 왕이 바뀐다 하오. 나는 별을 기다리지 않고 올렸소.신라 귀족 출신 장군. 647년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김춘추 등에 의해 진압되었다. 신라 왕권 강화 과정의 상징적 인물.